퓌로스 전쟁에는 하계 위키 / 특징적 표현 퓌로스 전쟁에는 하계 위키 / 특징적 표현
1. 개요 2. 실제 퓌로스는… 3. 역사상의 실례 4. 가상 매체에서 (결과적으로) 퓨로스의 승리를 한 경우 5.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1. 개요 2. 실제 퓌로스는… 3. 역사상의 실례 4. 가상 매체에서 (결과적으로) 퓨로스의 승리를 한 경우 5.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그러니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다섯 번 싸워 이긴 나라는 결국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네 번으로 이긴 나라는 피폐해질 것이며, 세 번으로 이긴 나라는 패자(패)가 될 것이고, 두 번으로 이긴 나라는 왕이 될 것이며, 한 번으로 쳐서 이긴 나라는 황제[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여러 번 이겨서 천하를 손에 넣은 자는 드물고, 망한 자가 오히려 많습니다. 오자서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다섯 번 싸워 이긴 나라는 결국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네 번으로 이긴 나라는 피폐해질 것이며, 세 번으로 이긴 나라는 패자(패)가 될 것이고, 두 번으로 이긴 나라는 왕이 될 것이며, 한 번으로 쳐서 이긴 나라는 황제[제]가 될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부터몇번이고이기고천하를얻은자는드물고,망한자가오히려많습니다.오자
고 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고 상병벌모, 그 다음 벌교, 그, 하공성. 시고백정백순’, ‘비선지선자야’, ‘불전이글인지병’, ‘선지선자야’. 고산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므로 최상은 병력으로 적을 싸우려는 의도 자체를 깨는 것이고, 다음은 적의 외교를 깨는 것이며, 그 다음은 적의 병사를 깨는 것이며, 성을 공격하는 것은 최악이다 고 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고 상병벌모, 그 다음 벌교, 그, 하공성. 시고백정백순’, ‘비선지선자야’, ‘불전이글인지병’, ‘선지선자야’. 고산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므로 최상은 병력으로 적을 싸우려는 의도 자체를 깨는 것이고, 다음은 적의 외교를 깨는 것이며, 그 다음은 적의 병사를 깨는 것이며, 성을 공격하는 것은 최악이다
키네아스는 이탈리아 원정 준비로 바쁜 필로스를 찾아왔다. “전하, 로마는 매우 호전적인 나라랍니다. 만약 그런 나라를 이길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물어볼 것도 없는 말 아닌가. 로마를 정복하게 되면 그리스인이든 다른 야만인이든 우리에게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더 이상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필로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키네아스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그럼 이탈리아를 정복한 뒤에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필로스는 키네아스가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인지 몰랐다. 이탈리아 옆에는 아주 부유한 시칠리아가 있지 않나요? 거기는 지금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에, 손에 넣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렇죠. 그렇게 되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요? 필로스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푹 쉬면서 매일 즐거운 이야기라도 하자……」[1] 그러자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 온 키네아스는 말했다. 전하는 지금도 푹 쉬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무슨 노력과 고통, 그리고 위험이 없어도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고생하려고 합니까?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 p.158159 키네아스는 이탈리아 원정 준비로 바쁜 필로스를 찾아왔다. “전하, 로마는 매우 호전적인 나라랍니다. 만약 그런 나라를 이길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물어볼 것도 없는 말 아닌가. 로마를 정복하게 되면 그리스인이든 다른 야만인이든 우리에게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더 이상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필로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키네아스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그럼 이탈리아를 정복한 뒤에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필로스는 키네아스가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인지 몰랐다. 이탈리아 옆에는 아주 부유한 시칠리아가 있지 않나요? 거기는 지금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에, 손에 넣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렇죠. 그렇게 되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요? 필로스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푹 쉬면서 매일 즐거운 이야기라도 하자……」[1] 그러자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 온 키네아스는 말했다. 전하는 지금도 푹 쉬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무슨 노력과 고통, 그리고 위험이 없어도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고생하려고 합니까?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 p.158~159
Pyrrhic Victory 고대의 유명한 일화이자 시사 용어.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승리를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북서부의 에페이로스 왕 피로스 1세는 알렉산드로스 3세 이래 최고의 전략 전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에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그로 인해 발발한 퓌로스 전쟁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거둔 승리에 비해 아군의 손실이 너무 컸다. 로마군과 처음으로 결전을 벌인 헤라클레어 전투에서는 휘하 병력 3만 5천 중 4천을, 그 다음 해에 벌인 아스크룸 전투에서는 병력 4만 명 중 3천 명을 잃는 큰 손실을 보고 말았다. [2]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필로스는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로마인과 싸워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면 우리는 완전히 끝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승리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고 결국에는 패배를 안겨주는 승리를 필로스의 승리라고 칭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피로스는 전투에서는 로마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그에 따른 손해를 자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한 데다 동맹이던 이탈리아 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지원 태만으로 손해를 메우지 못해 결국 전쟁에서 패해 에페이로스로 물러나게 된다. 물론 이기지도 못한 로마군의 피해는 산술적으로는 훨씬 컸지만 로마는 자신들의 본토였고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로마는 멀리 원정을 온 데다 본국의 규모도 훨씬 작았던 피로스에 비해 물량에서 훨씬 우위여서 이 손해를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파비우스 전략과 비슷하거나 같은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처럼 보일 수 있다. 양측 모두 전쟁으로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는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로스의 승리는 공격자의 입장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의도한 전략적 목적(예: 영토 쟁탈, 적의 정치적 굴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를 보이며, 다만 피해가 큰 승리가 모두 피로스의 승리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우는 총력전, 멸망전에서는 피해에 관계없이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중화민국의 중일전쟁 승리나 소련의 독소전쟁 승리 등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전쟁에서 지면 모두 죽거나 노예가 되고, 처음부터 국가가 멸망할 경우 질 때 잃는 것이 이길 때 잃는 것보다 많기 때문에 승리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의 퓨로스는…[편집] Pyrrhic Victory 고대의 유명한 일화이자 시사 용어.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승리를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북서부의 에페이로스 왕 피로스 1세는 알렉산드로스 3세 이래 최고의 전략 전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에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그로 인해 발발한 퓌로스 전쟁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거둔 승리에 비해 아군의 손실이 너무 컸다. 로마군과 처음으로 결전을 벌인 헤라클레어 전투에서는 휘하 병력 3만 5천 중 4천을, 그 다음 해에 벌인 아스크룸 전투에서는 병력 4만 명 중 3천 명을 잃는 큰 손실을 보고 말았다. [2]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필로스는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로마인과 싸워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면 우리는 완전히 끝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승리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고 결국에는 패배를 안겨주는 승리를 필로스의 승리라고 칭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피로스는 전투에서는 로마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그에 따른 손해를 자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한 데다 동맹이던 이탈리아 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지원 태만으로 손해를 메우지 못해 결국 전쟁에서 패해 에페이로스로 물러나게 된다. 물론 이기지도 못한 로마군의 피해는 산술적으로는 훨씬 컸지만 로마는 자신들의 본토였고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로마는 멀리 원정을 온 데다 본국의 규모도 훨씬 작았던 피로스에 비해 물량에서 훨씬 우위여서 이 손해를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파비우스 전략과 비슷하거나 같은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처럼 보일 수 있다. 양측 모두 전쟁으로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는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로스의 승리는 공격자의 입장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의도한 전략적 목적(예: 영토 쟁탈, 적의 정치적 굴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를 보이며, 다만 피해가 큰 승리가 모두 피로스의 승리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우는 총력전, 멸망전에서는 피해에 관계없이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중화민국의 중일전쟁 승리나 소련의 독소전쟁 승리 등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전쟁에서 지면 모두 죽거나 노예가 되고, 처음부터 국가가 멸망할 경우 질 때 잃는 것이 이길 때 잃는 것보다 많기 때문에 승리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의 퓨로스는…[편집]
사실 피로스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로마와의 전투 자체보다 피로스를 불러온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의 무성의한 태도가 더 큰 문제였다. 그들이 충분한 지원을 해줬다면 피로스는 전력을 제대로 복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로마에도 더 큰 위협을 가했을 것이다. 30만 명을 주겠다는 약속도 막상 가보니 1만 명이었고, 로마와 싸우다가 카르타고에도 아그로를 당기기도 했다. 게다가 해군도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카르타고가 훨씬 막강하기 때문에 피로스는 결국 카르타고 해군에 대패해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럼에도 새로 얻은 병사들이 비윤리적인 상황에서도 로마와 카르타고를 상대로 연승[3]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한니발은 퓌로스를 자신보다 뛰어난 지휘관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알려진 것처럼 병력 피해는 로마군의 피해가 필로스군보다 컸다. 헤라클레어 전투에서 로마군은 손실이 전사자 약 7천 명, 포로 7천 명이었던 반면, 피로스군은 손실 3~4천 명 정도만 있었으므로 전투만 놓고 보면 피로스의 완승이다. 아스크룸 전투에서도 로마군의 피해는 8000여 명이었지만 피로스군의 피해는 3000여 명으로 피로스군이 더 잘 싸웠다. 결국 피로스가 로마에서 철수한 이유에는 그리스 도시의 지원이 없어 돈을 내겠다는 시칠리아나 다른 곳에서 전력을 소모한 것이 컸다. 로마가 잘 싸워 물리친 것도 아닌 셈이다. 피로스의 승리에는 승리의 질적 문제보다는 승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문제와 보급의 문제가 더 컸다. 이 말의 원전이 그리스인(로마 시민이기도 했지만)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인 만큼 그저 로마인의 자화자찬이나 정신승리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 [4]그러나 그리스 도시국가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폴리스들에게 30만 명은커녕 그 3분의 1이라도 피로스에게 지원할 여유가 있었다면 피로스에게 원군을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외세까지 끌어들인 시점에서 로마보다 훨씬 열세에 밀리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 피로스가 로마를 이긴다고 해도 전쟁의 달인인 피로스가 로마를 대신해 새로운 상전이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타란토 등이 피로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를 주저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리스 도시국가는 물론이고 에페이로스까지 합쳐도 국력에서 상당히 우위를 점하는 로마를 상대로 공수표 약속만 믿고 무모하게 싸움을 걸었던 피로스 본인도 원정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3. 역사상의 실례[편집] 사실 피로스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로마와의 전투 자체보다 피로스를 불러온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의 무성의한 태도가 더 큰 문제였다. 그들이 충분한 지원을 해줬다면 피로스는 전력을 제대로 복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로마에도 더 큰 위협을 가했을 것이다. 30만 명을 주겠다는 약속도 막상 가보니 1만 명이었고, 로마와 싸우다가 카르타고에도 아그로를 당기기도 했다. 게다가 해군도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카르타고가 훨씬 막강하기 때문에 피로스는 결국 카르타고 해군에 대패해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럼에도 새로 얻은 병사들이 비윤리적인 상황에서도 로마와 카르타고를 상대로 연승[3]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한니발은 퓌로스를 자신보다 뛰어난 지휘관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알려진 것처럼 병력 피해는 로마군의 피해가 필로스군보다 컸다. 헤라클레어 전투에서 로마군은 손실이 전사자 약 7천 명, 포로 7천 명이었던 반면, 피로스군은 손실 3~4천 명 정도만 있었으므로 전투만 놓고 보면 피로스의 완승이다. 아스크룸 전투에서도 로마군의 피해는 8000여 명이었지만 피로스군의 피해는 3000여 명으로 피로스군이 더 잘 싸웠다. 결국 피로스가 로마에서 철수한 이유에는 그리스 도시의 지원이 없어 돈을 내겠다는 시칠리아나 다른 곳에서 전력을 소모한 것이 컸다. 로마가 잘 싸워 물리친 것도 아닌 셈이다. 피로스의 승리에는 승리의 질적 문제보다는 승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문제와 보급의 문제가 더 컸다. 이 말의 원전이 그리스인(로마 시민이기도 했지만)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인 만큼 그저 로마인의 자화자찬이나 정신승리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 [4]그러나 그리스 도시국가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폴리스들에게 30만 명은커녕 그 3분의 1이라도 피로스에게 지원할 여유가 있었다면 피로스에게 원군을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외세까지 끌어들인 시점에서 로마보다 훨씬 열세에 밀리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 피로스가 로마를 이긴다고 해도 전쟁의 달인인 피로스가 로마를 대신해 새로운 상전이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타란토 등이 피로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를 주저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리스 도시국가는 물론이고 에페이로스까지 합쳐도 국력에서 상당히 우위를 점하는 로마를 상대로 공수표 약속만 믿고 무모하게 싸움을 걸었던 피로스 본인도 원정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3. 역사상의 실례[편집]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살아남은 소수의 저항군이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살아남은 소수의 저항군
승자가 없는 싸움 승자의 저주 파비우스 전략 역승치킨 게임병림픽 승자가 없는 싸움 승자의 저주 파비우스 전략 역승치킨 게임병림픽
[1] 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통상적으로 그런 대대적인 정복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점령한 땅의 민심을 안정화시키고 유화작업을 벌여야 하는 동시에 점령지역을 탐내는 자국의 유력인사나 귀족들을 상대로 지배력을 행사해 억압하고 왕권을 강화시켜야 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복자는 절대로 쉴 수 없다. 키네아스가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을 모두 먹었다면 보통의 피로스 시대에서도 무리이고, 길면 피로스 다음 왕까지 가도 안정화가 끝날지 모르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피로스의 발언은 땅을 먹을 생각만 하고 그 뒤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이래서야 나라가 망하기 딱 좋은데, 다름 아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복전쟁을 끝내기도 전에 요절해버리자 곧 나라가 망했다. 마케도니아인과 페르시아인의 융화 작업을 이미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피로스가 그동안 고려했다면 ‘전쟁이 끝났을 경우 복지 내에서 내 지지도는 땅을 칠 테니 나는 그 적의를 모두 짊어지고 은퇴하고, 그 대신 비교적 무난한 내 후계자를 세워 안정화를 시작하겠다’고 생각해 말한 적도 있지만, 적어도 이 에피소드나 후술하는 모습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낮다. [2] 아스쿨룸 전투에서 잃어버린 부대의 대부분은 장교에 의해 더 큰 타격을 받았다. [3] 물론 필로스는 신병들을 고평가하지 않았는지 이겨도 자신의 원래 부하들이 죽을 때마다 우려가 많았다. [4]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에 상당히 우호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다. [5] 다만 카르타고가 한니발을 방치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여러 차례 병력을 편성하여 한니발을 지원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다른 곳에서 로마군에게 대패하여 긴급히 병력 보충이 필요해 그쪽으로 보낸 것이다. 다만 한니발을 제외한 나머지 장군들이 무능했던 것이다. [6] 다만 현양-송고라인의 수제자와 팽월, 한신은 따로 싸웠다기보다는 대전략 아래 유기적으로 싸웠으니 둘 중 하나만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애초에 고제-한신-팽월은 따로 싸운 게 아니라 대전략 아래 유기적으로 관련돼 싸웠기 때문이다. 즉, 고제-한신-팽월 그 모든 것을 통틀어 항우의 퓌로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7] 원나라 때 몽골족과 함께 지배민족의 지위에 있던 색목인(정확히는 그중 무슬림)이 명나라 건국 이후 명나라 황실의 정책에 따라 강제로 한족에 동화돼 이슬람교 신앙만 간신히 지킨 것이 오늘날 회족의 직계 기원이다. [8] 다만 그래도 이라클리오스가 페르시아에 승리했기 때문에 로마제국이 살아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엘라클리오스에게 패배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이슬람에 멸망하고 말았다. 또 이라크 리오스는 군사력을 보존시키고 아나톨리아는 유지하며 2세기 후 로마제국은 다시 중흥기를 맞게 된다. [9] 만약 패배했다면 오히려 동로마의 멸망이 빨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슬람 세력이 집단력이 강하게 모인 병사들이 많았지만 동로마가 페르시아에 패배했다면 페르시아가 멸망하는 날 자신들에게도 칼날이 날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승리하여 병력을 보존하고 퇴각한 덕분에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였다. [10] 다만 이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이 당시 한 매국노가 송나라가 건국되기 전에 요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대가로 연운 16주라는 요충지를 그대로 넘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들 땅은 만리장성 남쪽에 위치한 곳이므로 이를 되찾지 않으면 설령 요나라나 금나라를 멸망시켜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요나라와 금나라를 멸망시켜 완충지대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이미 예전에 완충지대가 호라단으로 넘어가 그 완충지대를 되찾고자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11] 임진왜란 때 쓴 돈보다 당시 명나라 황제였던 만력제가 사치를 위해 쓴 돈이 몇 배나 더 많았을 정도였다. [12] 사실 조선보다 국력이 훨씬 강했던 명나라조차 척계광 이전까지는 일본 정규군도 아닌 왜구를 상대로 제2의 도시인 난징까지 위협받았을 정도로 고전(출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조선이 100년 전란을 겪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그만큼 싸운 것도 대단한 일이다. [13] 신성로마제국 중 가톨릭 세력. 당시 제국 내 개신교 세력은 스웨덴을 지원했다. [14] 국왕이 최전방으로 시찰을 가던 중 갑작스런 안개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운 나쁘게도 지나가던 적 기병대에 발각되어 사망[15]사실 부르봉 왕가의 사치는 루이 14세 때부터 루이 15세 때 절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의 책임이 크다. 루이 16세는 오히려 상당히 검소했다. 사치스럽기로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도 의외로 검소하게 살았다. 특히 사치스럽게 살려고 해도 당시 프랑스의 재정이 파탄나는 바람에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선대 왕들의 사치가 너무 심해 두 사람의 안팎이 아무리 아쉬워도 기울어가는 나라를 살리는 데는 선택도 없었다(…). 후에 프랑스 왕실을 몰락시킨 혁명정부도 루이 14세와 루이 15세가 망친 재정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16] 다만 소련은 독소전쟁에서 결과적으로 승리해 동유럽에 위성국을 세우고 미국과 경쟁하는 세계의 초강대국이 됐다. [17] 미국에서 칠면조는 총으로 사냥하면 닭보다 잡기 쉬운 달콤한 먹잇감 취급을 받는다. 그만큼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학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뜻.[18] 여러 건물로 얽혀 있는 부코바르의 도심지형을 이용해 유고 인민군과 세르비아인 민병대에 기습전과 비정규전으로 공격해 타격을 입혔다. [19] 사실 이때는 2002한일월드컵을 위해 가능하면 북한과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던 것과 경고사격과 직접사격을 가급적 하지 않는 교전규칙에 원인이 있었다. 결국 이 전투를 기점으로 대청해전 때는 경고방송-경고사격-직접사격으로 매뉴얼을 전환해 확실하게 승리로 몰고 갔다. [20] 다만 싸움 끝에 얻은 것이 피로스의 승리가 아니라 애초 최종 목적이 달성되면 숙청되는 입장이었다. ‘무력에 의한 분쟁 근절’을 표면적인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본래의 목적은 소렌스탐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가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1] 발칸과의 싸움 [1] 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통상적으로 그런 대대적인 정복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점령한 땅의 민심을 안정화시키고 유화작업을 벌여야 하는 동시에 점령지역을 탐내는 자국의 유력인사나 귀족들을 상대로 지배력을 행사해 억압하고 왕권을 강화시켜야 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복자는 절대로 쉴 수 없다. 키네아스가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을 모두 먹었다면 보통의 피로스 시대에서도 무리이고, 길면 피로스 다음 왕까지 가도 안정화가 끝날지 모르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피로스의 발언은 땅을 먹을 생각만 하고 그 뒤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이래서는 나라가 망하기에 딱 좋지만, 다름 아닌 마케도니아의 알레